24년 10월 초, 3일이나 되는 공휴일을 끼고 다녀온 미국여행. 주로 머물렀던 뉴멕시코와 애리조나 홈스테이에서 느낀 점 의외의 포인트다. ‘어떻게 나이들 것인가?’





마당과 수영장이 있는뉴멕시코와 애리조나의 가정집
이번 여행이 특별했던 이유는 친구가 미국 현지인 집에서 하숙 중인데 지역적으로 대도시가 아닌 자연친화적인 곳인 점 , 그리고 집 오너들이 70세 이상의 여성이라는 점 덕분에 은퇴 후 전원적인 삶에 대한 미리보기를 조금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직 삶의 고단함과 한창 전쟁중인 중년의 눈에는 여유롭고 넉넉해 보이기만 한 그들의 삶인데, 그들도 그들 나름의 경제적 고민은 -연금, 생활비, 정치변화 등- 많다고 한다. 하지만 다닥다닥 붙은 이웃들과 하늘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집에서 살아가는 서울의 삶과는 너무나 상반된 이들의 생활공간을 보니 공간이 얼마나 인간의 사고를 제한하는지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이렇게 드넓은 공간에 자연과 동물 뿐인 곳에 서 있자니 정말 만감이 교차했다. 자연이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있고 교훈적인지 그 존재감에 연신 나는 감탄했다.
What you eat is what you are
40살이 되도록 엄마와 동거하며 엄마가 부재한 날은 라면먹는 날인 철부지에게 이 명 문구는 던지는 메시지가 크다. 당신이 먹는 것이 곧 당신이다. 정성스레 잘 차린 음식을 먹는 사람과 인스턴트를 먹는사람은 존재 자체가 달라진다는 것인데 내 세포를 구성할 원료가 되는 음식에 나는 너무 정성과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을 두 집주인분들을 통해 알았다. 냉장고에는 저렴한 월마트 음식은 찾아보기 힘들고 거의 대부분 Sprout 같은 오가닉 전문 마트에서 온 음식들이었다. 계란 하나도 신경써서 몸을 챙기는 두 70대 여성을 보면서 장수를 위해서라기보다도 세상에 단 한번 사는 나를 위해 조금 더 정성스레 차려진 음식을 섭취할 필요가 있다는 그간 해보지 않은 생각을 했다. “언제나 라면의 가치가 평가절하 되어있다”고 울부짖는 <콩나물, 오뎅라면의 전문가> , 우리회사 대표이사님이 들으시면 하실 말씀이 많겠지만 .. 물론, 맛탕 쉽네 하고 고구마를 썩힌 나는 아직도 갈 길이 요원하다.
반려견의 의미
난 cat person. 그런데 이번에 여행 중 체류했던 두 집 어머님 모두 유독 크기가 큰 개들을 1, 2마리씩 키우셨고 삶의 패턴과 양식이 ‘가장 소중한 가정의 일원’인 강아지들에게 맞춰져 있었다. 산책은 당연하거니와 그들과 끊임없는 대화와 교감을 하는 주인들을 보며 세상에서 가장 loyal한 가족으로서 강아지의 가치를 느낄 수 있었다. 처음 본 나에게조차 무한한 애정과 관심을 표해주는 이 강아지들의 건강한 흥분은 내가 이미 어릴 때 잃어버린 순수한 호기심에 대한 향수도 불러일으켰다. 내 양말에 침을 흥건하게 묻혀 이리저리 뒹굴거리도록 내버려둔 장난은 좀 당황스러웠지만 해가 뜨기 전에 선선한 공기 속에 강아지의 이끌림에 따라 집앞 공원을 산책하는 애리조나 거주 70대 여인의 아침은 평화로운 즐거움 그 자체였다.
다양한 장식품들의 은근한 조화
밤늦게 공항에 착륙하여 집에 자정에 가까운 시간에 도착했을 때, 집 주인이 나를 위해 배정해준 침실이 너무 예뻐 감동스럽기까지 했다. 앤틱한 미국식 높고 푹신한 침대도 그렇지만 벽에 걸린 너무나 어여쁜 그림과 포스터들, 멋스럽게 침대조명아래 놓인 몇 권의 책들. 다음날 날이 밝아 제대로 집 전체를 돌아보았을 때, 집에는 정말 수많은 그림과 장식품들이 놓여져있었다. 복도, 테이블, 장식장, 오피스공간, 부엌 어디랄 것 없이 모두 예술이 없는 공간이 없었다. 동양적인 자기들, 인디언문화가 깃든 소품들, 독특한 그림과 고급진 장신구들.. 집값의 부담으로 생활 수납공간을 마련하기에 바쁜 현대인의 눈에는 다양한 국가와 지역에서 온 이 모든 것들의 은근한 조화가 ‘아름답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예술적 안목을 가진 사람의 큐레이팅은 이런것인가? 무언가 삶의 치열한 전쟁을 마치고 나면 , 나도 언젠가 이런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을까? 라는 그동안 해보지 않은 생각의 영역을 경험했다.
그 자리에 있지만 보기 어려웠던 별자리들
또 하나 잊지 못할 추억은 바로 밤하늘의 별. 인간의 육안으로 큰 노력 없이 이렇게 많은 별을 볼 수 있단 말인가. 한국에서는 산골짜기 정도 들어가야 별이 보이니 , 별을 좀 보고있자면 등골이 오싹하여 무서움증이 들어 숙소로 바로 들어가곤 했다. 그런데 이곳은 사방이 탁 트여 아무것도 없고 별빛 뿐이다. 내가 방문한 시기의 문제일까? 아니면 지역적인 문제일까.. 이유는 모르지만 이 곳은 달이 높게 뜨지 않고 빨리 지고 밤하늘엔 온통 별 뿐이었다. 달이 없거나 작은 날 별이 밝다고하지 않나. 20년도 전부터 줄 곧 나에게 밤하늘의 별자리는 가장 쉽고 익숙한 북두칠성과 오리온 뿐이었다. 그런데 이 곳에 오니 그들이 정확히 어떤 별자리 사이에 있고 둘이 천구에서 어떤 위치에 존재하는지 한눈에 알아볼 수 가 있었다. 그저 조용히 바람소리에 귀기울이며 그 달만 쳐다보고 있어도 전혀 다른 세상에 와있는 느낌이다. 다른 행성들과 달리 이런 별들은 정말 수 십, 수 천, 수 만 광년 떨어진 곳에서 온 빛을 본다는 것이고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우리는 그 별의 무수한 기간 전의 과거를 보는 것이며 현재 그 별의 운명은 어떠한지 알 수 없다는 불길하고 슬프기까지 한 사실. (과학아, 정말 그러니? 난 듣고도 이게 사실인지 믿겨지지가 않아 ㅋㅋ얼마나 먼거리면 그런거야 ?) 별자리를 쉽게 알려주는 어플의 도움을 받아 이제는 제법 별에 대해 아는체를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나이듦에 대한 기대
제목처럼 나는 이번여행을 통해 나이듦에 대한 생각자체를 조금 바꾸었다. 육체적 노화의 슬픔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나에게 여전히 50, 60대는 조금 부정적인 기운을 지울 순 없을 것 같다. 그러나 70대는 이제 나에게 진정한 육체적 정신적 평화를 누릴 수 있는 나이로 느껴진다. 물론 현실은 그때가 된다면 병마와 지겨운 싸움을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여행을 하기 전 부정과 불안으로만 가득했던 나의 노년에 대한 이미지는 이로서 다소의 긍정적 선회를 했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친절히도 방 한켠을 내 준 집주인에게 남기고 온 편지에도 이에 대한 감사함을 표현했다. 그런 노년을 만들어가려면 지금을 충실히 살아야한다는 당연한 다짐도 함께 해본다. 잘 벌고 , 잘 자고, 잘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