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지점에서 연락이 왔다. 갑자기 잘 되던 외국계은행(은행명은 여러가지 이유로 비공개 ㅎㅎ) 계좌의 인터넷 뱅킹에 홀드가 걸렸고, 예금주인 대표이사만이 본인인증 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기업 간의 거래에 대한 이체이니 몇 만 불 단위로 작은 금액이 아니었는데 어떠한 경고나 안내도 없이 이렇게 갑자기 lock을 거는 이유가 무엇일까? 잘못한 것도 없는데 뭔가 해당국가 금융당국의 검열(?)에 걸려든 것인가 실무자들조차 별 망상이 다 든다.
업무 대리인 권한의 한계 – “저 직원이라고요…”
지점 직원은 언제나 처럼 실무적으로 그래 왔듯 본인을 직원이라 설명하고 자기 선에서 해결을 해보려고 했다. 그러나 해당 은행은 심플하게라도 문제의 원인을 포함한 어떤 홀딩에 관한 정보에 대해서 대표이사 본인이 아닌 제 3자에게 제공할 수 없다고 오프라인 방문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은행이 국가도 아니고 이건 좀 과한게 아닌가 차차 불쾌하기까지 했다. 대표이사가 고령에 건강이 좋지 않아 해외 출장이 어렵다고 간곡히 부탁을 하니, 그렇다면 한국지점에 방문해보라고 한다. 통화나 ZOOM같은 화상 전화를 통해 본인 인증을 해도 되겠냐는 말에 요즘에는 AI와 딥페이크 등 기술을 이용한 사기가 너무 많아 어렵단다. 그것도 이해가 가는 부분이긴 하다.
무작정 은행을 방문하다
해당 은행은 한국에 지점이 단 하나라고. 정말 놀랐다. 대표이사를 동행하고 은행에 방문했는데 건물 자체가 해당 은행 소유인데 층마다 꽤 많은 직원들이 일하고 있는 것 같다. 점심식사 때라 직원들은 ID카드를 패용하고 바쁘게 왕래를 하고 로비 외 고층에 접근 가능한 중앙 엘리베이터는 Security의 삼엄한 경비 속에 엄격히 외부인의 접근이 차단된다.
외국계 은행
따로 고객 접수처 같은 것은 없고 1층에 개인금융서비스점이 있어 들어갔다. 상황을 설명하니 놀랍지도 않게 해외 계좌에 대해서 한국은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한다. 이런 사안을 처리할 RM( #RelationshipManager )이 별도로 없어서 아마 이것은 해외에서 처리 해야 할 것 이라며 미룬다. 외국에 모든 결정과 통제권이 있는 외국계 특유의 보수성, 소극성과 같은 부정적 성향이 친절을 연기하는 톤 아래 훤히 보인다. 이야기가 다시 원점으로 가는 느낌이다. 해외에서는 서울 지점을 가라했는데, 서울지점에서는 다시 해외 고객센터로 연락하라니. 역시 큰 기대 하지 않는게 좋았나 싶지만 서비스를 제공하는 입장에서 고객을 이렇게 번거롭게 , 일방적인 내규에 따라 불편을 끼쳐도 되는지 약이 오른다. 더운 날씨에 동석한 대표이사 눈치도 이만저만이 아니고. 다시 해외 지점에 연락해서 다시 서비스 센터에 한국에 특정 담당자 지정을 요청해보라고 했다. 그 사이 근처 식당과 커피숍에서 적당히 좋은 방안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긴장된 시간을 보냈다.
서비스 센터를 통한 유선 신분확인
다행히 지점에서는 어차피 계좌 귀속자체가 한국이 아닌 이상 더 도움을 기대하기 어려워 hotline 전화연결로 본인인증만 되면 유선으로 이 홀드해제가 가능할 것 같다고 연락이 왔다. 헛걸음을 한 것도 열받는데 주차비만 15,000원. 해당 건물 점심시간 겹쳐서 인증도 못 받고, 아무리 법인돈이라지만 화가 치밀어 올랐다. 대표이사가 실무적인 숫자나 상세한 내용을 꿰고 있는 것은 아니니 적당히 자료를 준비해서 대표이사실에서 현지 통화를 통해 해결해보기로.
(오늘만) 비서인데 제가 번역을 해도 안되나요?
제목대로 hotline과 연결되고 내가 물은 첫 질문이다. 해외 계좌 소유자지만 언어로 소통하기 어려울 수 있으니 합리적으로 설득을 해보려 했지만 3rd party에게는 무조건 이런 경우 본인과 해야 한다고 한다. 등록된 개인 이멜로 상황정리해서 보내주면 되는것 아니냐니 무조건 이거는 유선 통화로 응대해야 한다고 고집이다. 수월한 소통을 위해 영어로 천천히 말해줄 수도 있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대표 이사님이 영어 까막눈은 아니시니 조심히 상황 설명 드리고 홀로 통화 하시게 하고 나왔다. 생각보다 수월하게 흘러가는 듯한 대화, 그리고 급하게 손짓을 하시는데 여러가지 확인 중, 송금하려던 외화 현재 기준 잔액을 알고 있느냐는 훅들어온 질문. (아무리 대표이사가 예금주라도 이걸 누가 알고있을까 ㅋㅋㅋ) 바로 회계 직원과 연결하여 금액 확인하고 불러주고 여러가지 추가로 물어보더니 finally 계좌가 5-10분 후 정상화 될거라고 한다. 처음에는 단호하게 1:1 통화만 가능했다고 하지만 내가 옆에서 소근거리는거 다 듣고도 모른 척 해준 인간미도 발휘한 상담원 ㅋㅋ고맙다! 나도 몰래 대표이사님께 엄지 척 칭찬을 해드렸다.
Scam에 대처하는 은행들의 올바른 자세
나중에 후반부에 직접 대표이사와 은행 통화 내용을 들어본 바, 내용의 핵심은 알고 보니 요즘 Fraud, scam 같은 송금에 대한 사기가 너무 판쳐 아마 은행에서 경험한 여러 사기케이스에 해당하는게 아닌지 꽤 많은 질문을 하는 것이었다. 새로운 사업 제안, 사내 직원의 횡령시도, 사기계좌로의 송금 등 여러가지 뉴스에서나 보게 되는 그런 케이스에 해당하는지 의심하고 은행은 사전 통지도 없이 hold를 강력하게 걸은것이다. 다 듣고 보니 오히려 은행에 신뢰가 올라가기도 하고 다행히 유선으로 해결이 되었지만 하마터면 비싼 비행기표 끊어 출장을 갈 뻔 한 대표님. 족히 100만원도 더 쓸 뻔한 것이다. 지사의 직원은 다소의 무력감과 불쾌감을 느끼며 어떻게 경고도 없이 이럴수가 있냐고 분통 터뜨린다. 화가 난 그녀에게 은행은 당연히 예금주를 가장 신뢰하고 존중하는거 아니겠냐며 아름다운 결말을 지었다. 나의 상사도 해당은행이 나까무라는 아니네 라고 칭찬으로 마무리 하셨지만, 아무튼 오늘도 이렇게 금융에 대해 하나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