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워딩 15년, 지독히도 변하지 않는 것들 – 선사의 불친절함에 대하여
포워딩 15년차. 오래달리기를 하는 사람으로서 지난 오랜 세월 동안 많은 부분들이 전산화되고 paperless가 상용화된 업계의 발전을 지켜보는 일은 자못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지독히도 변하지 않는 몇 가지가 있다면 그 중 하나가 바로 선사들의 불친절함이다. (갑질이라는 자극적인 표현을 썼다 지웠다했지만 노골적으로 말하면 갑질에 가까운 불친절함이다.)한국에 본사를 둔 회사들은 대부분 한국적인 정서와 코드가 맞아 이용하기가 편한데 사실 미주, 구주까지 커버하는 원양선사 중 국적선사는 한진해운이 사라진 이후 HMM이 유일한데 점점 그들도 대형외국계 선사를 닮아가는 형국이다.
인프라와 시스템을 가진자와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 자
선사와 포워더 (때로는 화주)의 관계가 바로 시스템을 가진자와 사용자의 관계이다. 어차피 운임이 비슷하고 서비스가 비슷하다면 내 입맛에 맞는 선사를 골라 쓸 수 있다. 하지만 고객사들이 동남아시아 그 이상 거리의 국가와 수출입을 한다면 외국계 선사를 부득이 이용해야하는 경우가 있다. 최근 10년 사이 업계는 많은 변화가 생겨 과거 EMAIL과 전화로 처리하던 수많은 일들을 거의 자사 홈페이지 내지 플랫폼에서 처리하고 있다. 문제는 회사마다 컨셉과 브랜딩, 마케팅 방식이 다 다르니 유저들은 단순히 Email을 쓰면 해결되던일을 웹사이트 사용법을 시행착오를 거쳐 숙지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2017년부터 대형선사들이 도입한 캔슬피는 현재 보편화되어 당장 시스템 숙지 미숙은 금전적인 손해로 이어지기도 한다. 전통적으로 마진율이 그다지 높지 않은 물류 환경을 생각하면 비용 문제는 예민할 수 밖에 없다.
견적자동화와 엄격한 책임제도
2017년부터 MAERSK 와 CMA 등 대형선사들은 시범적으로 CANCEL FEE를 도입했다고 한다. 과거 해운업계에서 캔슬피는 영업적 장애물이 될 수 있었고 이는 정을 중시하는(?) 한국인의 정서에 맞지 않았기에 과연 성공적으로 정착할지 의구심들도 있었다. 그러나 현재 해운시장 현황은 물류적 , 전산적 인프라를 모두 갖춘 글로벌 선사들이 그들의 시스템으로 편입되는 고객사들의 휴먼에러를 이용해 때로는 과하고 부당해보이는 수준의 이득을 취하고 있는 것 같다. 선박회사 업계에서도 빈익빈 부익부가 명확해진다고 해야할까? 강자들은 충분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지속적인 인수합병을 통해 계속 확장일로를 가는가 하면 그러지 못하는 중소 선사들은 점점 경쟁에서 뒤쳐지는 느낌이다. 특정 모선의 예약현황을 유저에게 공개 하지 않는 방식과 달리 오늘날의 예약제도는 유저가 직접 가능한 스케줄 현황을 조회하고 요청할 수 있는 구조다. 운임까지도 영업사원에게 별도 문의가 필요없이 시스템에서 자동 파일링 되는 경우가 많다. 운임 자동오퍼 시스템에 유입을 위해서라도 영업사원이 직접 제시하는 운임보다 낮은 수준으로 설정해놓은 경우도 많다.
제한된 재량과 이기적인 불친절함
이러한 시장에서 영업사원들은 사실 큰 역량발휘를 하지 못한다. 선사들은 점점 영업사원 개인의 역랑에 의존하기보다는 회사 자체 시스템내에서 영업관리를 하고 싶어한다. 그러다보니 외국이 본사인 외국계선사들은 유저들의 어떤 경우에도 메뉴얼대로만 처리할 수 있고 특이사항과 난도있는 문제가 발생하면 처리방침을 확인하는데도 시간이 오래걸릴 수 밖에 없다. 내가 선사에서 일해본적은 없으니 정확히 선사의 업무강도가 어떤지 알 수는 없지만 참 이상하리만큼 선사직원들은 친절한 사람 찾기가 어렵다. 저자세가 필수인 영업사원들만 ‘오래가지 않을’ 사교성을 보인다. 선사 직원들 입장에서는 플랫폼에 대한 이용법이 다 공지되어있고 늘 비슷한 문의를 받으니 지치고 질릴 노릇이긴 하나, 이용이 처음이거나 생소한 유저들의 입장을 한 번만 이해한다면 최소 친절할 수는 있지 않을까? 유럽계 선사들은 이미 전화응대를 최소화 한지 오래다. 기본적으로 전화번호 찾기가 어렵고 모든 문의용 메일로 보내고, 자동으로 CASE가 생성되어 그것에 1회성 답변을 해주는 형태이다. 특정인이 지정되어 한 사안을 처리하는것이 아니고 CASE별로 사람이 지정되다 질문이 여러 번 되어야 하는 (즉, 케이스를 여러 번 이슈 해야 하는) 건 들은 수차례 응답자가 바뀌는 촌극이 일어난다. 그러한 과정에서 선사직원들은 진절머리 나도록 불친절하고 성의가 없다.
직업적 자긍심과 즐거움을 갉아먹는 요소
우리끼리 늘 하는 소리가 있다. ‘걔네 AI잖아’ , ‘한국말을 하는데 한국어가 아니야 ㅎㅎ’. 실제 상담원들이 한국말을 하는 외국인인 경우도 많아 소통이 비효율적이거나 아예 불가한경우가 부지기수이다. 그러다가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해 폭발하여 서면으로 인프라 조폭과 말다툼을 하고 나면 기분이 이만저만이 아니고 직업적 자긍심까지 떨어뜨린다는 느낌을 받는다. 타이틀만 영업사원이지 나가서 살벌한 영업세계에서 살아남을 면역력은 1도 없어보이는 영업사원들도 도처에 널렸다. 창의성과 유연성 친절함을 잃어버린 개인의 엄청난 후퇴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처우가 좋은데 만족하고 회사다니는 사람들같다. 개인의 기지와 노력, 친절함으로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없는 구조안에서 사는 기분이 어떨지. 분명한건 인생을 살아갈 면역을 기르는데는 결코 좋은 환경은 아니어보인다.
기계나 AI와 같은 MAERSK의 고객센터와 무의미한 이메일 맹공을 주고받다가 이런 글까지 쓰게되었는데 , 사실 괜히 큰 회사들은 아니므로 분명히 배울점은 많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수년간 잃어버린 친절함에 대해서는 세계 1위 자리를 다투는 기업이라면 다시 생각해봐야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