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럭시20에서 아이폰 16프로로 갈아탄 후기 – 불편한 심경

(좌) 아이폰16프로 1테라와 4년이상 사용중이었던 갤럭시20 (우)

이번에 폰을 옮기면서 가장 큰 실수는 카카오톡 백업 문제였다. 예전처럼 카카오톡을 새폰에 설치해도 예전 폰에 사진, 영상과 같은 멀티미디어 자료가 남아있고 그것을 열어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래서 굳이 톡서랍 서비스로 돈들일 필요 없을것 같아 카카오톡 백업 옵션 중, 미디어 말고 텍스트만 하고 선별적으로 천천히 백업하려고 했는데 카톡은 기본적으로 한 폰에서만 구동이 되는것이었다. 그래서 새 폰에는 백업해둔 text자료와 서버에 남아있는 최근 며칠짜리 이미지들만 구현이 되고 구폰의 카카오톡에 남아있는 미디어는 열어볼 수는 없는 것이다. 다시 구폰에서 카카오톡을 인증한다고 해도 기존 자료는 삭제되고 다시 백업자료만 가져오니 방법이 없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포렌식복구를 전문업체에 맡겨 할 수도 있다고 하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할 일은 아니라 포기하기로 했다. 과거를 언제나 지우지 못 하는 나의 지지부진함을 강제로 포맷해주나 싶기도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약간의 위로라면 PC 카카오톡을 켜둔 채로 주고받은 자료는 썸네일이라도 남아있을 확률이 있다는 점. 카톡 외 라인, 은행, 증권 등 보안이 중요한 어플들은 모두 한 폰에서만 구동이 된다.

타이핑 반응도와 정확도 는 아이폰이 훨씬 좋은 것 같다. 아이폰-갤럭시-아이폰 순으로 나는 폰을 사용해 왔는데 이유는 몰라도 갤럭시를 쓴 이래 줄곧 나는 오타가 많이 났다. 그리고 디자인 뿐만 아니라 어플을 구동되는 액션과 반응속도 같은 것은 애플 특유의 세련됨이 느껴진다. 그리고 글씨체가 정갈한 느낌이다. (꽤 주관적인 판단이겠지만)

또 내가 쓰는 OK캐시백 오락어플은 갤럭시에서는 홈잠금 락기능을 써야했는데, 아이폰은 락기능을 쓰지 않아도 만보기 등으로 포인트를 적립할 수 있었다. 또 이게 과연 좋은점인지 불편한 점인지 모르겠지만 차량에서 블루투스 연결된 상태에서 전화가 왔을때 갤럭시는 차량으로 음성출력이 기본값이었던것 같은데 아이폰은 보안때문일까 폰수화기가 기본 값이라 내가 매번 차량을 선택해야 핸즈프리로 통화가 가능하다. 물론 설정값을 바꾸면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디폴트 값이 그러다 보니 좀 불편하다.

또 재미난 점은 갤럭시에서 인스타는 인스타 영상이 재생되면 듣던 음악이 멈춰졌는데, 아이폰은 음악과 영상음악이 동시에 재생된다. 또 카톡보이스톡의 경우 갤럭시에서는 유선전화 부재중전화에 표시가 안되었는데 아이폰은 그것도 표시해준다.

대한민국에 살면서 삼성페이에 한번 익숙해졌다면 아이폰은 편의적 측면에서 결코 이길 수가 없다. 4년간 삼성페이에 익숙해진 나는 아이폰으로 바꾸고 며칠 간 결제를 해야 할 순간에 손에 카드가 없어 불편한 적이 많았고 특히 주차비 정산에서 몇 번 당황을 해야했다. 애플페이는 아직 삼성페이 만큼 상용화되지 않는 것으로 보여서 현재 가장 아쉬운 기능이다.

아이폰에서 갤럭시로 넘어올 때 어플 동기화율 갤럭시 to 아이폰 동기화율이 상당히 떨어졌다. 생각보다 수동으로 다시 받아야하는 어플들이 많았다. 또 고속버스터미널 예매 어플에 내 아이디로 로그인을 해도 등록해둔 카드 내역이 다 사라져 다시 등록을 해주어야 했다. 구체적인 예시는 제시가 어렵지만 어떤 사이트는 비번을 넣을 때 부분수정이 안되고 아이폰에서는 다 지워지고 처음부터 입력해야해 그 또한 불편했다.

주말마다 하는 운동을 찍어서 녹화하기로 편집을 즐겨하는 나에게 갤럭시는 정말로 최적의 조건이었다. 아이폰 녹화는 3초 카운팅 후 시작하고 갤럭시보다 구동이 느리게 느껴진다. 또 갤럭시는 유튜브를 보면서 카톡을 동시 실행하거나 은행일을 보면서 네이트온 답장을 하는 멀티태스킹이 분할기능을 통해 가능했는데 아이폰은 (현재까지 내가 알기론) 안 되는것 같다. 이 또한 설정을 바꾸면 되는 일이라 해도 꽤 불편하다.. 무엇보다 통화녹음이 24년 들어 이제야 되지만 상대에게 알림이 간다는 통화중 녹음기능도 갤럭시가 주던 엄청난 편의기능이었다. 업무적으로 중요한 정보이거나 상담정보같은 것은 굳이 상대에 알리지 않고 음성기록이 필요한 순간이 많아서 유용하게 쓰고 있었다.

갤럭시에서 ‘폴더’로 불리던것이 아이폰은 ‘앨범’. 신기한게 갤럭시는 폴더 안 사진이 다 없어지면 자연히 폴더도 없어지는데 아이폰은 사진은 0개여도 앨범공간은 남아있다. 어떤것이 합리적 결정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일단 삭제에 앨범삭제가 따로 있는 것이 번거롭게 느껴졌다. 갤럭시의 뽀얀 색감의 느낌과 달리 아이폰은 꽤 사실적인 묘사로 셀카의 환상을 많이 깨주었다. 사람들은 왜 아이폰이 사진이 잘나온다고 하는 것일까? 아웃포커싱 기능때문인가? 나는 인물사진은 갤럭시가 훨씬 잘나온다고 느껴진다. (색감적 측면에서) 손바닥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기능도 얼마나 유용했는지 모른다. 아이폰이 좋은점은 디폴트 값으로 홈화면에 사진을 랜덤으로 보여줘서 조금 더 감성적으로 과거를 추억하기에 좋은 것 같다. 그래서 내 회사 동료는 나의 과거 사진이 가끔 등장해서 과거를 추억한다고 말했었나보다.

난 무조건 지문이 편했다. 얼굴인식은 인식 실패율이 높고 문제는 어두운곳에서는 인식율이 현저히 떨어지는다는 것이다. 얼굴은 각도가 중요한데 지문은 사실 반응속도가 굉장히 빨랐다고 생각된다. 이 부분이 은행, 메신저 어플을 쓰는데 꽤 불편함으로 느껴진다. 이 또한 주관적 의견 같다. 아이폰만 쭉 써온 누군가는 얼굴인식이 훨씬 편하다고 했으니.

갤럭시를 쓰면서 좋았던 것 중 하나는 멜론으로가 등록된 음악을 들으면 특정 가사 구간을 뛰어넘어 들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아이폰은 가사는 나오지만 특정 가사부분을 재생은 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어려운 랩을 따라부를 때 가사 하나하나 따라해보던 나만의 귀여운 취미를 할 수가 없다. ㅎㅎ

써놓고 보니 아이폰으로의 이동이 매우 불편하고 부정적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래도 4년 된 폰 보다는 확실히 새폰이 좋은건 부정할 수 가 없다. 특히 이번에 나는 1테라의 대용량을 택했으니 용량이 주는 편의를 무시할 수가 없다. 폰을 옮기면서 새삼스레 든 생각은 역시 새로운경험은 언제나 유의미하고 뇌에 신선한 자극을 준다는 점. 현재가 언제나 최고는 아니라는 점. 아이폰을 쓰며 폰 디스플레이에 터치하는 손동작 자체가 달라진 스스로를 보며, 전세계인들이 사랑하는 이 기기를 제대로 즐겨보자 다짐해 본다.

재테크 찬양론 – 주식과 비트코인, 그리고 부동산

30대 중반이 되도록 돈의 속성과 중요성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나. 한 때 더 좋은 대학교를 가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면 지금은 돈에 늦게 눈을 뜬 것이 더 후회가 된다. 타고난 문학도(라고하기에는 독서량이 너무 형편없지만)라서 좋은 글을 읽고 쓰거나 옮겨 말하는 것이 마냥 좋은 사람으로 돈을 직접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속물적인 일이라고 생각했다. 돈은 교환가치를 지닌 수단일 뿐, 얼마를 더 벌고 덜 벌고는 중요한 일은 아니라 생각했다. 그런데 왜 서른 중반에 들어 내 생각이 바뀌었을까? 그것은 당연하게도 세월이 흐름에 따라 경제적 안정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 때문이다. 20대는 개인의 건강, 직장, 미래에 대한 고민보다도 현재의 즐거움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시기다. 게다가 보통은 부모님과 함께 거주를 하니 오롯이 내 삶을 경영하지 않아도 살아지는 나이다. 그러나 삼십대 중반이 되면 하나 , 둘 삐걱거리는 신체도 생기고, 직장에서의 나의 입지와 직장 자체의 안정성에 대해 고민이 시작된다. 독립이라도 하면 부모님이 해주던 것을 내가 다 해야하니 삶이라는 과실의 단물은 다 빠지고 쓴 부위를 먹게 되는 것이다. 나도 삶이 그렇게 재미 없어지기 시작할 때, 갑자기 관심지수가 반등한 것이 바로 ‘돈’ 이다.

회사의 나와 동갑내기 산책메이트는 일찍이 재테크에 눈을 뜬 사람이었다. 2020년 코로나 직후 나에게 산책시간을 이용해 주식 청약을 전파한 그 덕분에 나는 아파트청약보다 훨씬 간단한 주식청약을 해보았고 작은 돈이지만 2배까지 벌 수 있는 이 수단이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자연적 수순으로 일반 기업 주식과 테슬라 열풍이 불던 때라 미국주식까지 입문하게 되었다. 이 좋은 것을 왜 나는 이제 알았나 싶어 가족들에게도 전파해서 40대 후반의 이모와 인터넷 쇼핑도 잘 못하는 우리엄마도 주식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해에 가상자산도 붐이 일어 가입하면 5천원을 준다는 비트코인까지 입문했으니 경제적으로 아주 큰 걸음을 내딛은 해다.

재테크계의 성공한 인물들인 존리, 워렌버핏 같은 사람들이 항상 주식을 꼭 해야한다며 투기 대신 투자를 하라고 한다. 흔히 말하는 ‘단타’는 주식의 핵심이 아니고 좋아하고 믿을 만한 기업에 오래도록 투자하면 무조건 성공한다고 한다. 내가 주식 입문 초기에 했던 것은 투기였다. 청약 특성상 상장 날 대부분은 많이 오르니 단기에 큰 성과를 느낄 수 있었고, 밤이면 시작되는 미국주식과 24시간 운영되는 비트코인 역시 변동폭이 크니 도박같은 성격이 있다. 낮에는 국내주식, 저녁에는 미국주식 그리고 24시간 비트코인. 한 달 정도 해보았을까 큰 돈도 아니었는데 처음 해보는 ‘돈놓고 돈먹기’에 정신이 팔려 정상적인 삶이 영위되지 않았다. 돈보다 귀중한 안구건강과 정신건강을 잃게 생겼는데, 심지어 그 걸린 돈이 엄청난것도 아니고 비트코인의 경우 5000원 손실이었다. 그런 스스로의 모습을 보고 갑자기 어이가 없어서 한동안 이미 묻어둔 돈들은 놔두고 주식을 떠났다. 역시 재테크는 있는 놈들이 하는거라고 하면서…

그러다 어느 날 연말정산에 생각보다 많이 돌려받지 못하는 세금이 많음을 깨닫고 오래도록 미뤄왔던 연금저축에 가입했다. 그리고 퇴직연금 운영 현황을 우연히 들여다보고 내 손으로 직접 상품변경도 해봤다. 회사를 오래 다니니 꽤 쌓인 금액이 크고, 큰 금액이 버는 돈은 그 규모도 점점 커지니 갑자기 즐거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연금저축을 통해 사람들이 입을모아 찬양하는 미국 지수 추종 ETF를 사보니 때 되면 분배금 들어오고 안 할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그러니 갑자기 미국 주식이 생각났고 다시 들어가 이제는 배당금 종목을 사 3개월에 한 번 씩 배당 문자를 받아보고 있다. 그간 고금리 시대였으니 조금 긴가민가했지만 이제 금리도 내려가 투자 해볼만 하다. 늘 현재를 살기에 미래를 준비하라는 엄마말씀을 귀기울이지 않았는데 이 또한 더 빨리 시작하지 않은 것이 후회될만큼 만족하고 있다.

그리고 회사에서 대표님이 직원들을 모아두고 비트코인의 가치에 대해 재평가를 하셨다고 말씀하셨다. 미국 유학중인 당신 아들이 중고거래를 비트코인으로 하는것을 보고 가상자산의 유통성에 대해 신뢰를 갖게 되었으며 연구를 해보고자 한다는 말씀. 일리가 있어보여 비트코인도 조금 사봤다. 현재 비트코인은 아주 소액 투자지만 10%의 수익을 올렸다. 오지 않은 미래지만 정말 미래에 상용되는 거래수단이라면 나도 하나쯤은 갖고 있고 사용법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는데, 초반의 투기의 자세가 아닌 수년의 롱런의 자세로 접근하니 마음이 편해 오히려 더 잘되는 느낌이다. 이제야 비로서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 돈을 내가 다 잃을지라도 내가 재테크를 아무것도 모르는 것 보다는 이렇게 안다는 것의 가치가 수익 그 이상이 가치가 있다고 말이다.

부자아빠와 가난한 아빠 , 부자의 그릇 , 현명한 투자자 , 부의 추월차선 과 같은 유명하다는 책들도 들춰보았고 그들은 한결같이 같은 메시지를 던진다. 돈에 관심을 가지고 투기하지말고 투자를 하라고. 책을 읽는다고 돈을 바로 버는 것은 아니고 그런 철학이 직접적 수익과 관련이 있는 것 같지도 않다. 다만, 건강한 재테크관을 가지게되는데 아주 큰 도움이 된다. 그리고 금융문맹이 아직도 너무 많다는 대한민국에 적어도 내 주변 지인들은 꼭 이 즐거움을 알았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에는 SNS 마케팅으로 어떻게 수익창출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열심히 공부중이다. 주식만큼 가시적으로 큰 수익을 가져다주지는 않는 것 같지만 , 이 또한 유투브 , 인스타그램, 틱톡의 홍수속에 살아가는 요즘 시대에 꼭 알아야할 경제인듯 하여 수익성과 무관하게 즐거움을 가지고 공부하고 있다. 글쓰는 것에 큰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나 같은 사람에게 괜찮은 부수입을 가져다줄 수 도 있지 않나 싶다. 그리고 그 몇 년 전에 이미 이러한 경제를 이해하고 SNS 관리를 열심히 하던 친구, 동생들 남편을 떠올리며 그들을 대기업다닌다던 다른 남편들보다 훨씬 똑똑한 사람이라고 인정하기 시작했다.

사실 이렇게 몇 년간 소박한 재테크를 해본 결과, 역시 사람들이 왜 부동산을 하는지 알것 같다. 주식과 비트코인의 변동성은 아무래도 아무리 장기적 관점을 가진 자라도 계속 보게 될 수 밖에 없는데 부동산은 일단 대부분은 오르게 되었고 그 오르는 폭이 훨씬 다른 것보다 크고 일단 사두면 불로소득의 끝을 보여주니까 말이다. 현재로선 뇌의 용량에 한계가 있으니 아직 부동산까지는 들여다보지 못하고 있는데 이제 나에게 다음 투자처는 부동산이다. 트럼프의 당선으로 며칠간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나의 소박한 비트코인, 테슬라가 빨간불로 돌아섰음에 조금은 이기적인 즐거움을 느끼며 오늘은 재테크의 중요성에 대해 남겨본다. 포인트테크에 중독된 우리엄마도 퇴직연금 ETF로 소박한 수익을 남기고 나에게 이은혜를 잊지 않겠다는 문자를 남겼으니 –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꼭 ‘투자’ 해보길 권한다.

[영화후기] It ends with us 우리가 끝이야 -가정폭력에 대하여

주인공 Lily 의 끈적한 썸이야기로 시작한 영화. 예고를 통해 대략 내용을 알고 있었음에도 남자주인공의 폭력성이 드러날 때 깜짝 놀랐다. 역시 폭력이란 우리에게 그런 것이다. 예상이 되어도 놀랍고 두려운 것. 과거 회상에서 삶에 희망이 없던 외톨이 소년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고 그에게 사랑을 느끼고 아버지의 폭력에 의해 이별을 겪어야 했던 Lily의 아픔.. 그리고 현실에서 아버지와 같은 폭력성을 숨긴 남자친구를 만나게 되어 (그도 그 나름의 또 사정이 있었지만) 결국 이별을 택하고 어린 시절 남자친구와 다시 관계를 이어가는 이야기.. 너무나 사람 좋게 생긴 구 남친, 그리고 마치 용서를 할 것 같았던 분위기에서 단호하게 난 이혼을 원한다고 선언하는 릴리 – 그 결정이 나에게는 약간의 반전이었다.

특히 우리 부모세대들은 어려서부터 육체적이지 않더라도 우리는 얼마나 가정이라는 울타리 내에서 많은 폭력을 감내해야했던가. 특히 여자인 신분으로 나의 가족들은부끄러운 과거라 생각해 입에도 올리기 싫어하지만 나는 초등학교 때 우리 외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구타를 당한 후 딸 집에 며칠 간 피신을 와서도 그의 식사를 걱정하는 안타까운 모습을 지켜봐야했다. 나 역시 폭력을 멈춘 상태의 할아버지에게는 언제나 애정과 연민을 느끼곤 했다. 사람이 아니라 ‘술’ 이 문제라고 말하면서. 그리고 그 시대에 가장들이 꽤 흔히 행사했던 그 간헐적 폭력들은 그들이 동시에 지니고 있는 인간적 외로움 같은 것들을 이유로 쉽게 면책을 받곤 했다. 나 역시 ‘사실’ 임에도 이러한 내용을 기술하는데 있어서 마음의 큰 가책을 느낄 만큼 할아버지에 상당한 애정을 갖고 있는데, 그가 이 세상을 떠나던 날의 기억이 내 평생의 가장 가슴 아픈 순간 중 하나로 남아있다는 것이 바로 그 근거다. 이렇게 폭력과 사랑이 가슴 양쪽에 동시에 존재하는 관계도 있지만 폭력이 모든 애정을 다 지워버릴 만큼 깊은 자국을 남기는 관계도 있으니 이 소설과 영화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는 것 같다.

사실 좀 웃긴 얘기지만 나에게는 앤딩 크레딧에 흘러나온 노래가 이 영화 최고의 수확이었다. Love the hell out of you – 널 미치도록 사랑해 . 엄청난 호소력을 가진 Lewis Capaldi의 목소리가 심금을 울리며 너가 원하는게 천국이라면 내가 그걸 가져다준다는 구시대적인 거짓부렁에도 자꾸 귀에 맴돌만큼 너무 좋아 노래 끝까지 듣고 서야 극장을 나왔다. 마지막 구남친이 노랫말처럼 삶의 모든 고난을 대신 받아들여주고 다시 릴리의 삶에 봄을 찾아준 그 사랑과 이 노래의 감정이 맞아 떨어져 감동스러웠다. 블레이크라이블리도 시나리오를 받기 전까지 이 작가를 몰랐었다지만 젊은 여성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는 이 논란의 작가의 책을 조만간 사서 읽어봐야겠다.

열정의 살사클럽을 다녀오다 -홍대보니따

리듬감도 제법있고 어릴때 부터 방송댄스 따라하기를 즐겨 했던 나에게 언젠가는 나도 스트리트우먼파이터에 나오는 댄서들처럼 무대에서 멋진 퍼포먼스를 해보고싶다는 작은 꿈이 있었다. 특별한 약속이 없던 금요일 저녁, 멕시코인 지인이 홍대에서 가끔 간다는 살사클럽을 방문할 계획이라는 말을 듣고 급 번개를 잡아 하필(?) 할로윈 무드가 피크를 찍던 10월의 금요일 홍대 거리를 만끽할 수 있었다. 섹시하고 역동적이며 열정적인 남미의 춤이라는 것 정도가 살사에 대해 알고 있는 전부라 일반 클럽이 아닌 이 곳은 어떤 분위기일지 갑자기 무척 궁금했다.

새벽까지 즐겁게 즐길 작정으로 집이 먼 지인은 홍대에 호텔을 잡았고, 일을 막 끝내고 온 옷차림이라 저녁식사를 마치고 호텔방에 가 옷을 갈아입겠다고 했다. 호텔에 올라가 옷을 바꿔 입을 동안 기다렸는데, 아주 화려한 드레스에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큰 귀걸이를 착용한 그녀의 진지한 드레스 코드 앞에 또 다른 한 명의 지인이 나에게 ‘너 면바지 뭐냐’ 했던 말이 떠올라 조금 민망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 공간에 중심에 있지는 않을테니 뭐 대수인가 싶어 가벼운 마음으로 장소로 향했다. 이태원참사로 인해 경찰과 119 인력이 많은 인파가 몰릴 것을 대비하여 지하철 입구 근처에 배치되어있었다. 연인, 동창, 동료로 보이는 많은 무리들의 흥분된 금요일 저녁의 만남이 홍대의 큰 거리들을 꽉 채우고 있다. 목적지는 홍대에서 평소 집을 가기위해 타던 마을버스 정류장 바로 근처에 위치해 있었다. 이름은 보니타(Bonita).

클럽 보니타 내부 바 모습

건물 지하로 내려가니 입장료는 현금 10,000원, 카드는 11,000원. 음료교환권을 주는데 알코올은 종류마다 다소의 추가 비용을 받고 무알콜, 탄산, 물 같은 것을 티켓을 내면 무료로 마실 수 있다. 라틴 음악이 크게 흘러나오고 거의 대부분 남녀가 쌍으로 이뤄진 커플들은 댄스무아지경이다. 직접 내 두 눈으로 처음 보는 광경에 다소 어리둥절하고 어색하고 공간은 약간 답답하게도 느껴지는데 곧 적응하고 나니 그제야 춤사위들이 눈에 들어온다. 우선 음악이 크기도 하고 당장 춤을 출게 아니니 안으로 깊게 들어가 마련된 허름한 바 공간에서 각자 취향대로 음료를 마시면서 우리는 담소를 나누었다. 할로윈 특별 이벤트로 춘리, 해골 등 각종 특이한 분장을 한 사람들이 하나 둘 나타나고 모두 흥분된 분위기다. 바텐더(?)라고 해야하나, 음료를 판매하는 직원들은 모두 진한 메이크업에 조금 야한 복장을 착용하고 있다.

다른 한명의 지인과 나는 호기심으로 이 곳을 왔지만 , 멕시코인 지인은 춤을 즐기러 왔으니 무대로 다시 나가 그녀가 춤을 추는 것을 구경하기로 했다. 춤에도 도가 (무도?ㅋㅋ) 있는지 매 곡마다 사람들은 파트너를 정하여 자유스러운 분위기속에서 춤을 췄다. 오래지않아 멕시칸 친구는 춤 파트너를 만나 춤을 추었는데 자연스럽고 능숙한 스텝이 꽤 멋지고 보는 재미가 있다. 한 곡이 끝나니 이번에는 조금 나이가 있으신 분이 춤을 제안하는데 , 솔직히 움직임이 단선적이고 유연하지 못해 자칫 지인을 다치게 할 것도 같았다. 실상 그의 미숙한 리듬을 그녀가 다 맞춰주고 있는 느낌. 후일담을 들어보니 살사에 대해 한 수 가르치려한 그에게 그녀는 “나 멕시코사람이다. 나에게 살사를 논하지 않아도 된다.”고 응수했다고. ㅎㅎ 그런데 다음 곡으로 넘어가고 복장부터 올블랙 스판셔츠와 약간의 나팔바지를 입은 비범한 남자 파트너를 만난 그녀. 첫 춤 사위부터 예사롭지 않다. 훨씬 커진 동선과 조금 더 끈적해진 눈빛교환, 약속하지 않았지만 물흐르듯 흐르는 호흡. 자유로운 표현인듯 보이지만 살사도 어떤 정해진 스텝 등 동작이 있다고 하던데 그래서 인지 이 두 고수들은 꽤 오래된 커플처럼 너무나 예쁜 리듬으로 춤을 추는 것이다. 정말 신기했다. 남녀가 눈이 맞았으니(?) 줄곧 계속 추지 않을까 예상할 때 쯤 그들은 또 미련없이 각자의 파트너를 찾는다. ‘춤바람’이라는 단어가 생각날만큼 살사의 건전성에 대한 다소의 의심이 있던 나에게는 꽤 신선한 광경이었다. 다른 커플들도 마찬가지로 추파를 던진다는 느낌보다는 (물론 일부는 내적 추파를 던졌겠지만) 정말 춤 자체를 즐기는 느낌이다. 이 건전한 몰두가 꽤 멋있어보였다.

드레스코드부터 예의가 없는 나는 줄곧 복도의 가에 서서 팔짱끼고 신기한 것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구경을 하고 있었는데 어떤 어르신이 오셔서 귓가에 조용히 “춤은 안추고 구경왔나봐”라며 배우라고 권하신다. 딱 봐도 춤을 출 마음이 없는 내모습 이었나보다. ㅎㅎ 나의 또다른 지인은 멕시칸 친구에게 한 수 배우겠다며 한 곡을 추었고 , 나에게도 해보란 제안을 하였지만 나는 구경꾼모드를 해제하는 순간 원치 않는 낯선 사람과 춤을 추게 될 상황, 혹은 거절을 해야할 상황이 부담스러워 극구 사절했다. 오늘은 보는 것 만으로도 충분한 경험이었으므로. 11시를 향해가는 시간도 한 몫을 했으리라.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우리는 서로의 집으로 귀가를 했고 , 멕시칸 친구만 남아 마저 살사댄스를 즐겼다고 한다.

신경학을 공부하는 필라테스 강사 내 사촌동생이 언제나 힘주어 강조하는 말은 “뇌는 새로운 것을 좋아한다”. 나이가 들 수록 새로운 것을 접하거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을 꺼려하거나 기회 자체가 적어지는데 그날은 그런 면에서 아주 신선하고 재미있는 추억을 남겼다. 무엇보다 살사의 건건성을 내 두눈으로 확인했고 , 다음번에는 낯선사람과의 춤보다는 친근한 다수의 멤버들과 마음 편하게 한 번 즐기러와도 좋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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