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의 살사클럽을 다녀오다 -홍대보니따

리듬감도 제법있고 어릴때 부터 방송댄스 따라하기를 즐겨 했던 나에게 언젠가는 나도 스트리트우먼파이터에 나오는 댄서들처럼 무대에서 멋진 퍼포먼스를 해보고싶다는 작은 꿈이 있었다. 특별한 약속이 없던 금요일 저녁, 멕시코인 지인이 홍대에서 가끔 간다는 살사클럽을 방문할 계획이라는 말을 듣고 급 번개를 잡아 하필(?) 할로윈 무드가 피크를 찍던 10월의 금요일 홍대 거리를 만끽할 수 있었다. 섹시하고 역동적이며 열정적인 남미의 춤이라는 것 정도가 살사에 대해 알고 있는 전부라 일반 클럽이 아닌 이 곳은 어떤 분위기일지 갑자기 무척 궁금했다.

새벽까지 즐겁게 즐길 작정으로 집이 먼 지인은 홍대에 호텔을 잡았고, 일을 막 끝내고 온 옷차림이라 저녁식사를 마치고 호텔방에 가 옷을 갈아입겠다고 했다. 호텔에 올라가 옷을 바꿔 입을 동안 기다렸는데, 아주 화려한 드레스에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큰 귀걸이를 착용한 그녀의 진지한 드레스 코드 앞에 또 다른 한 명의 지인이 나에게 ‘너 면바지 뭐냐’ 했던 말이 떠올라 조금 민망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 공간에 중심에 있지는 않을테니 뭐 대수인가 싶어 가벼운 마음으로 장소로 향했다. 이태원참사로 인해 경찰과 119 인력이 많은 인파가 몰릴 것을 대비하여 지하철 입구 근처에 배치되어있었다. 연인, 동창, 동료로 보이는 많은 무리들의 흥분된 금요일 저녁의 만남이 홍대의 큰 거리들을 꽉 채우고 있다. 목적지는 홍대에서 평소 집을 가기위해 타던 마을버스 정류장 바로 근처에 위치해 있었다. 이름은 보니타(Bonita).

클럽 보니타 내부 바 모습

건물 지하로 내려가니 입장료는 현금 10,000원, 카드는 11,000원. 음료교환권을 주는데 알코올은 종류마다 다소의 추가 비용을 받고 무알콜, 탄산, 물 같은 것을 티켓을 내면 무료로 마실 수 있다. 라틴 음악이 크게 흘러나오고 거의 대부분 남녀가 쌍으로 이뤄진 커플들은 댄스무아지경이다. 직접 내 두 눈으로 처음 보는 광경에 다소 어리둥절하고 어색하고 공간은 약간 답답하게도 느껴지는데 곧 적응하고 나니 그제야 춤사위들이 눈에 들어온다. 우선 음악이 크기도 하고 당장 춤을 출게 아니니 안으로 깊게 들어가 마련된 허름한 바 공간에서 각자 취향대로 음료를 마시면서 우리는 담소를 나누었다. 할로윈 특별 이벤트로 춘리, 해골 등 각종 특이한 분장을 한 사람들이 하나 둘 나타나고 모두 흥분된 분위기다. 바텐더(?)라고 해야하나, 음료를 판매하는 직원들은 모두 진한 메이크업에 조금 야한 복장을 착용하고 있다.

다른 한명의 지인과 나는 호기심으로 이 곳을 왔지만 , 멕시코인 지인은 춤을 즐기러 왔으니 무대로 다시 나가 그녀가 춤을 추는 것을 구경하기로 했다. 춤에도 도가 (무도?ㅋㅋ) 있는지 매 곡마다 사람들은 파트너를 정하여 자유스러운 분위기속에서 춤을 췄다. 오래지않아 멕시칸 친구는 춤 파트너를 만나 춤을 추었는데 자연스럽고 능숙한 스텝이 꽤 멋지고 보는 재미가 있다. 한 곡이 끝나니 이번에는 조금 나이가 있으신 분이 춤을 제안하는데 , 솔직히 움직임이 단선적이고 유연하지 못해 자칫 지인을 다치게 할 것도 같았다. 실상 그의 미숙한 리듬을 그녀가 다 맞춰주고 있는 느낌. 후일담을 들어보니 살사에 대해 한 수 가르치려한 그에게 그녀는 “나 멕시코사람이다. 나에게 살사를 논하지 않아도 된다.”고 응수했다고. ㅎㅎ 그런데 다음 곡으로 넘어가고 복장부터 올블랙 스판셔츠와 약간의 나팔바지를 입은 비범한 남자 파트너를 만난 그녀. 첫 춤 사위부터 예사롭지 않다. 훨씬 커진 동선과 조금 더 끈적해진 눈빛교환, 약속하지 않았지만 물흐르듯 흐르는 호흡. 자유로운 표현인듯 보이지만 살사도 어떤 정해진 스텝 등 동작이 있다고 하던데 그래서 인지 이 두 고수들은 꽤 오래된 커플처럼 너무나 예쁜 리듬으로 춤을 추는 것이다. 정말 신기했다. 남녀가 눈이 맞았으니(?) 줄곧 계속 추지 않을까 예상할 때 쯤 그들은 또 미련없이 각자의 파트너를 찾는다. ‘춤바람’이라는 단어가 생각날만큼 살사의 건전성에 대한 다소의 의심이 있던 나에게는 꽤 신선한 광경이었다. 다른 커플들도 마찬가지로 추파를 던진다는 느낌보다는 (물론 일부는 내적 추파를 던졌겠지만) 정말 춤 자체를 즐기는 느낌이다. 이 건전한 몰두가 꽤 멋있어보였다.

드레스코드부터 예의가 없는 나는 줄곧 복도의 가에 서서 팔짱끼고 신기한 것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구경을 하고 있었는데 어떤 어르신이 오셔서 귓가에 조용히 “춤은 안추고 구경왔나봐”라며 배우라고 권하신다. 딱 봐도 춤을 출 마음이 없는 내모습 이었나보다. ㅎㅎ 나의 또다른 지인은 멕시칸 친구에게 한 수 배우겠다며 한 곡을 추었고 , 나에게도 해보란 제안을 하였지만 나는 구경꾼모드를 해제하는 순간 원치 않는 낯선 사람과 춤을 추게 될 상황, 혹은 거절을 해야할 상황이 부담스러워 극구 사절했다. 오늘은 보는 것 만으로도 충분한 경험이었으므로. 11시를 향해가는 시간도 한 몫을 했으리라.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우리는 서로의 집으로 귀가를 했고 , 멕시칸 친구만 남아 마저 살사댄스를 즐겼다고 한다.

신경학을 공부하는 필라테스 강사 내 사촌동생이 언제나 힘주어 강조하는 말은 “뇌는 새로운 것을 좋아한다”. 나이가 들 수록 새로운 것을 접하거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을 꺼려하거나 기회 자체가 적어지는데 그날은 그런 면에서 아주 신선하고 재미있는 추억을 남겼다. 무엇보다 살사의 건건성을 내 두눈으로 확인했고 , 다음번에는 낯선사람과의 춤보다는 친근한 다수의 멤버들과 마음 편하게 한 번 즐기러와도 좋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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