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테크 찬양론 – 주식과 비트코인, 그리고 부동산

30대 중반이 되도록 돈의 속성과 중요성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나. 한 때 더 좋은 대학교를 가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면 지금은 돈에 늦게 눈을 뜬 것이 더 후회가 된다. 타고난 문학도(라고하기에는 독서량이 너무 형편없지만)라서 좋은 글을 읽고 쓰거나 옮겨 말하는 것이 마냥 좋은 사람으로 돈을 직접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속물적인 일이라고 생각했다. 돈은 교환가치를 지닌 수단일 뿐, 얼마를 더 벌고 덜 벌고는 중요한 일은 아니라 생각했다. 그런데 왜 서른 중반에 들어 내 생각이 바뀌었을까? 그것은 당연하게도 세월이 흐름에 따라 경제적 안정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 때문이다. 20대는 개인의 건강, 직장, 미래에 대한 고민보다도 현재의 즐거움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시기다. 게다가 보통은 부모님과 함께 거주를 하니 오롯이 내 삶을 경영하지 않아도 살아지는 나이다. 그러나 삼십대 중반이 되면 하나 , 둘 삐걱거리는 신체도 생기고, 직장에서의 나의 입지와 직장 자체의 안정성에 대해 고민이 시작된다. 독립이라도 하면 부모님이 해주던 것을 내가 다 해야하니 삶이라는 과실의 단물은 다 빠지고 쓴 부위를 먹게 되는 것이다. 나도 삶이 그렇게 재미 없어지기 시작할 때, 갑자기 관심지수가 반등한 것이 바로 ‘돈’ 이다.

회사의 나와 동갑내기 산책메이트는 일찍이 재테크에 눈을 뜬 사람이었다. 2020년 코로나 직후 나에게 산책시간을 이용해 주식 청약을 전파한 그 덕분에 나는 아파트청약보다 훨씬 간단한 주식청약을 해보았고 작은 돈이지만 2배까지 벌 수 있는 이 수단이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자연적 수순으로 일반 기업 주식과 테슬라 열풍이 불던 때라 미국주식까지 입문하게 되었다. 이 좋은 것을 왜 나는 이제 알았나 싶어 가족들에게도 전파해서 40대 후반의 이모와 인터넷 쇼핑도 잘 못하는 우리엄마도 주식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해에 가상자산도 붐이 일어 가입하면 5천원을 준다는 비트코인까지 입문했으니 경제적으로 아주 큰 걸음을 내딛은 해다.

재테크계의 성공한 인물들인 존리, 워렌버핏 같은 사람들이 항상 주식을 꼭 해야한다며 투기 대신 투자를 하라고 한다. 흔히 말하는 ‘단타’는 주식의 핵심이 아니고 좋아하고 믿을 만한 기업에 오래도록 투자하면 무조건 성공한다고 한다. 내가 주식 입문 초기에 했던 것은 투기였다. 청약 특성상 상장 날 대부분은 많이 오르니 단기에 큰 성과를 느낄 수 있었고, 밤이면 시작되는 미국주식과 24시간 운영되는 비트코인 역시 변동폭이 크니 도박같은 성격이 있다. 낮에는 국내주식, 저녁에는 미국주식 그리고 24시간 비트코인. 한 달 정도 해보았을까 큰 돈도 아니었는데 처음 해보는 ‘돈놓고 돈먹기’에 정신이 팔려 정상적인 삶이 영위되지 않았다. 돈보다 귀중한 안구건강과 정신건강을 잃게 생겼는데, 심지어 그 걸린 돈이 엄청난것도 아니고 비트코인의 경우 5000원 손실이었다. 그런 스스로의 모습을 보고 갑자기 어이가 없어서 한동안 이미 묻어둔 돈들은 놔두고 주식을 떠났다. 역시 재테크는 있는 놈들이 하는거라고 하면서…

그러다 어느 날 연말정산에 생각보다 많이 돌려받지 못하는 세금이 많음을 깨닫고 오래도록 미뤄왔던 연금저축에 가입했다. 그리고 퇴직연금 운영 현황을 우연히 들여다보고 내 손으로 직접 상품변경도 해봤다. 회사를 오래 다니니 꽤 쌓인 금액이 크고, 큰 금액이 버는 돈은 그 규모도 점점 커지니 갑자기 즐거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연금저축을 통해 사람들이 입을모아 찬양하는 미국 지수 추종 ETF를 사보니 때 되면 분배금 들어오고 안 할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그러니 갑자기 미국 주식이 생각났고 다시 들어가 이제는 배당금 종목을 사 3개월에 한 번 씩 배당 문자를 받아보고 있다. 그간 고금리 시대였으니 조금 긴가민가했지만 이제 금리도 내려가 투자 해볼만 하다. 늘 현재를 살기에 미래를 준비하라는 엄마말씀을 귀기울이지 않았는데 이 또한 더 빨리 시작하지 않은 것이 후회될만큼 만족하고 있다.

그리고 회사에서 대표님이 직원들을 모아두고 비트코인의 가치에 대해 재평가를 하셨다고 말씀하셨다. 미국 유학중인 당신 아들이 중고거래를 비트코인으로 하는것을 보고 가상자산의 유통성에 대해 신뢰를 갖게 되었으며 연구를 해보고자 한다는 말씀. 일리가 있어보여 비트코인도 조금 사봤다. 현재 비트코인은 아주 소액 투자지만 10%의 수익을 올렸다. 오지 않은 미래지만 정말 미래에 상용되는 거래수단이라면 나도 하나쯤은 갖고 있고 사용법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는데, 초반의 투기의 자세가 아닌 수년의 롱런의 자세로 접근하니 마음이 편해 오히려 더 잘되는 느낌이다. 이제야 비로서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 돈을 내가 다 잃을지라도 내가 재테크를 아무것도 모르는 것 보다는 이렇게 안다는 것의 가치가 수익 그 이상이 가치가 있다고 말이다.

부자아빠와 가난한 아빠 , 부자의 그릇 , 현명한 투자자 , 부의 추월차선 과 같은 유명하다는 책들도 들춰보았고 그들은 한결같이 같은 메시지를 던진다. 돈에 관심을 가지고 투기하지말고 투자를 하라고. 책을 읽는다고 돈을 바로 버는 것은 아니고 그런 철학이 직접적 수익과 관련이 있는 것 같지도 않다. 다만, 건강한 재테크관을 가지게되는데 아주 큰 도움이 된다. 그리고 금융문맹이 아직도 너무 많다는 대한민국에 적어도 내 주변 지인들은 꼭 이 즐거움을 알았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에는 SNS 마케팅으로 어떻게 수익창출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열심히 공부중이다. 주식만큼 가시적으로 큰 수익을 가져다주지는 않는 것 같지만 , 이 또한 유투브 , 인스타그램, 틱톡의 홍수속에 살아가는 요즘 시대에 꼭 알아야할 경제인듯 하여 수익성과 무관하게 즐거움을 가지고 공부하고 있다. 글쓰는 것에 큰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나 같은 사람에게 괜찮은 부수입을 가져다줄 수 도 있지 않나 싶다. 그리고 그 몇 년 전에 이미 이러한 경제를 이해하고 SNS 관리를 열심히 하던 친구, 동생들 남편을 떠올리며 그들을 대기업다닌다던 다른 남편들보다 훨씬 똑똑한 사람이라고 인정하기 시작했다.

사실 이렇게 몇 년간 소박한 재테크를 해본 결과, 역시 사람들이 왜 부동산을 하는지 알것 같다. 주식과 비트코인의 변동성은 아무래도 아무리 장기적 관점을 가진 자라도 계속 보게 될 수 밖에 없는데 부동산은 일단 대부분은 오르게 되었고 그 오르는 폭이 훨씬 다른 것보다 크고 일단 사두면 불로소득의 끝을 보여주니까 말이다. 현재로선 뇌의 용량에 한계가 있으니 아직 부동산까지는 들여다보지 못하고 있는데 이제 나에게 다음 투자처는 부동산이다. 트럼프의 당선으로 며칠간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나의 소박한 비트코인, 테슬라가 빨간불로 돌아섰음에 조금은 이기적인 즐거움을 느끼며 오늘은 재테크의 중요성에 대해 남겨본다. 포인트테크에 중독된 우리엄마도 퇴직연금 ETF로 소박한 수익을 남기고 나에게 이은혜를 잊지 않겠다는 문자를 남겼으니 –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꼭 ‘투자’ 해보길 권한다.

[영화후기] It ends with us 우리가 끝이야 -가정폭력에 대하여

주인공 Lily 의 끈적한 썸이야기로 시작한 영화. 예고를 통해 대략 내용을 알고 있었음에도 남자주인공의 폭력성이 드러날 때 깜짝 놀랐다. 역시 폭력이란 우리에게 그런 것이다. 예상이 되어도 놀랍고 두려운 것. 과거 회상에서 삶에 희망이 없던 외톨이 소년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고 그에게 사랑을 느끼고 아버지의 폭력에 의해 이별을 겪어야 했던 Lily의 아픔.. 그리고 현실에서 아버지와 같은 폭력성을 숨긴 남자친구를 만나게 되어 (그도 그 나름의 또 사정이 있었지만) 결국 이별을 택하고 어린 시절 남자친구와 다시 관계를 이어가는 이야기.. 너무나 사람 좋게 생긴 구 남친, 그리고 마치 용서를 할 것 같았던 분위기에서 단호하게 난 이혼을 원한다고 선언하는 릴리 – 그 결정이 나에게는 약간의 반전이었다.

특히 우리 부모세대들은 어려서부터 육체적이지 않더라도 우리는 얼마나 가정이라는 울타리 내에서 많은 폭력을 감내해야했던가. 특히 여자인 신분으로 나의 가족들은부끄러운 과거라 생각해 입에도 올리기 싫어하지만 나는 초등학교 때 우리 외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구타를 당한 후 딸 집에 며칠 간 피신을 와서도 그의 식사를 걱정하는 안타까운 모습을 지켜봐야했다. 나 역시 폭력을 멈춘 상태의 할아버지에게는 언제나 애정과 연민을 느끼곤 했다. 사람이 아니라 ‘술’ 이 문제라고 말하면서. 그리고 그 시대에 가장들이 꽤 흔히 행사했던 그 간헐적 폭력들은 그들이 동시에 지니고 있는 인간적 외로움 같은 것들을 이유로 쉽게 면책을 받곤 했다. 나 역시 ‘사실’ 임에도 이러한 내용을 기술하는데 있어서 마음의 큰 가책을 느낄 만큼 할아버지에 상당한 애정을 갖고 있는데, 그가 이 세상을 떠나던 날의 기억이 내 평생의 가장 가슴 아픈 순간 중 하나로 남아있다는 것이 바로 그 근거다. 이렇게 폭력과 사랑이 가슴 양쪽에 동시에 존재하는 관계도 있지만 폭력이 모든 애정을 다 지워버릴 만큼 깊은 자국을 남기는 관계도 있으니 이 소설과 영화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는 것 같다.

사실 좀 웃긴 얘기지만 나에게는 앤딩 크레딧에 흘러나온 노래가 이 영화 최고의 수확이었다. Love the hell out of you – 널 미치도록 사랑해 . 엄청난 호소력을 가진 Lewis Capaldi의 목소리가 심금을 울리며 너가 원하는게 천국이라면 내가 그걸 가져다준다는 구시대적인 거짓부렁에도 자꾸 귀에 맴돌만큼 너무 좋아 노래 끝까지 듣고 서야 극장을 나왔다. 마지막 구남친이 노랫말처럼 삶의 모든 고난을 대신 받아들여주고 다시 릴리의 삶에 봄을 찾아준 그 사랑과 이 노래의 감정이 맞아 떨어져 감동스러웠다. 블레이크라이블리도 시나리오를 받기 전까지 이 작가를 몰랐었다지만 젊은 여성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는 이 논란의 작가의 책을 조만간 사서 읽어봐야겠다.

열정의 살사클럽을 다녀오다 -홍대보니따

리듬감도 제법있고 어릴때 부터 방송댄스 따라하기를 즐겨 했던 나에게 언젠가는 나도 스트리트우먼파이터에 나오는 댄서들처럼 무대에서 멋진 퍼포먼스를 해보고싶다는 작은 꿈이 있었다. 특별한 약속이 없던 금요일 저녁, 멕시코인 지인이 홍대에서 가끔 간다는 살사클럽을 방문할 계획이라는 말을 듣고 급 번개를 잡아 하필(?) 할로윈 무드가 피크를 찍던 10월의 금요일 홍대 거리를 만끽할 수 있었다. 섹시하고 역동적이며 열정적인 남미의 춤이라는 것 정도가 살사에 대해 알고 있는 전부라 일반 클럽이 아닌 이 곳은 어떤 분위기일지 갑자기 무척 궁금했다.

새벽까지 즐겁게 즐길 작정으로 집이 먼 지인은 홍대에 호텔을 잡았고, 일을 막 끝내고 온 옷차림이라 저녁식사를 마치고 호텔방에 가 옷을 갈아입겠다고 했다. 호텔에 올라가 옷을 바꿔 입을 동안 기다렸는데, 아주 화려한 드레스에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큰 귀걸이를 착용한 그녀의 진지한 드레스 코드 앞에 또 다른 한 명의 지인이 나에게 ‘너 면바지 뭐냐’ 했던 말이 떠올라 조금 민망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 공간에 중심에 있지는 않을테니 뭐 대수인가 싶어 가벼운 마음으로 장소로 향했다. 이태원참사로 인해 경찰과 119 인력이 많은 인파가 몰릴 것을 대비하여 지하철 입구 근처에 배치되어있었다. 연인, 동창, 동료로 보이는 많은 무리들의 흥분된 금요일 저녁의 만남이 홍대의 큰 거리들을 꽉 채우고 있다. 목적지는 홍대에서 평소 집을 가기위해 타던 마을버스 정류장 바로 근처에 위치해 있었다. 이름은 보니타(Bonita).

클럽 보니타 내부 바 모습

건물 지하로 내려가니 입장료는 현금 10,000원, 카드는 11,000원. 음료교환권을 주는데 알코올은 종류마다 다소의 추가 비용을 받고 무알콜, 탄산, 물 같은 것을 티켓을 내면 무료로 마실 수 있다. 라틴 음악이 크게 흘러나오고 거의 대부분 남녀가 쌍으로 이뤄진 커플들은 댄스무아지경이다. 직접 내 두 눈으로 처음 보는 광경에 다소 어리둥절하고 어색하고 공간은 약간 답답하게도 느껴지는데 곧 적응하고 나니 그제야 춤사위들이 눈에 들어온다. 우선 음악이 크기도 하고 당장 춤을 출게 아니니 안으로 깊게 들어가 마련된 허름한 바 공간에서 각자 취향대로 음료를 마시면서 우리는 담소를 나누었다. 할로윈 특별 이벤트로 춘리, 해골 등 각종 특이한 분장을 한 사람들이 하나 둘 나타나고 모두 흥분된 분위기다. 바텐더(?)라고 해야하나, 음료를 판매하는 직원들은 모두 진한 메이크업에 조금 야한 복장을 착용하고 있다.

다른 한명의 지인과 나는 호기심으로 이 곳을 왔지만 , 멕시코인 지인은 춤을 즐기러 왔으니 무대로 다시 나가 그녀가 춤을 추는 것을 구경하기로 했다. 춤에도 도가 (무도?ㅋㅋ) 있는지 매 곡마다 사람들은 파트너를 정하여 자유스러운 분위기속에서 춤을 췄다. 오래지않아 멕시칸 친구는 춤 파트너를 만나 춤을 추었는데 자연스럽고 능숙한 스텝이 꽤 멋지고 보는 재미가 있다. 한 곡이 끝나니 이번에는 조금 나이가 있으신 분이 춤을 제안하는데 , 솔직히 움직임이 단선적이고 유연하지 못해 자칫 지인을 다치게 할 것도 같았다. 실상 그의 미숙한 리듬을 그녀가 다 맞춰주고 있는 느낌. 후일담을 들어보니 살사에 대해 한 수 가르치려한 그에게 그녀는 “나 멕시코사람이다. 나에게 살사를 논하지 않아도 된다.”고 응수했다고. ㅎㅎ 그런데 다음 곡으로 넘어가고 복장부터 올블랙 스판셔츠와 약간의 나팔바지를 입은 비범한 남자 파트너를 만난 그녀. 첫 춤 사위부터 예사롭지 않다. 훨씬 커진 동선과 조금 더 끈적해진 눈빛교환, 약속하지 않았지만 물흐르듯 흐르는 호흡. 자유로운 표현인듯 보이지만 살사도 어떤 정해진 스텝 등 동작이 있다고 하던데 그래서 인지 이 두 고수들은 꽤 오래된 커플처럼 너무나 예쁜 리듬으로 춤을 추는 것이다. 정말 신기했다. 남녀가 눈이 맞았으니(?) 줄곧 계속 추지 않을까 예상할 때 쯤 그들은 또 미련없이 각자의 파트너를 찾는다. ‘춤바람’이라는 단어가 생각날만큼 살사의 건전성에 대한 다소의 의심이 있던 나에게는 꽤 신선한 광경이었다. 다른 커플들도 마찬가지로 추파를 던진다는 느낌보다는 (물론 일부는 내적 추파를 던졌겠지만) 정말 춤 자체를 즐기는 느낌이다. 이 건전한 몰두가 꽤 멋있어보였다.

드레스코드부터 예의가 없는 나는 줄곧 복도의 가에 서서 팔짱끼고 신기한 것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구경을 하고 있었는데 어떤 어르신이 오셔서 귓가에 조용히 “춤은 안추고 구경왔나봐”라며 배우라고 권하신다. 딱 봐도 춤을 출 마음이 없는 내모습 이었나보다. ㅎㅎ 나의 또다른 지인은 멕시칸 친구에게 한 수 배우겠다며 한 곡을 추었고 , 나에게도 해보란 제안을 하였지만 나는 구경꾼모드를 해제하는 순간 원치 않는 낯선 사람과 춤을 추게 될 상황, 혹은 거절을 해야할 상황이 부담스러워 극구 사절했다. 오늘은 보는 것 만으로도 충분한 경험이었으므로. 11시를 향해가는 시간도 한 몫을 했으리라.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우리는 서로의 집으로 귀가를 했고 , 멕시칸 친구만 남아 마저 살사댄스를 즐겼다고 한다.

신경학을 공부하는 필라테스 강사 내 사촌동생이 언제나 힘주어 강조하는 말은 “뇌는 새로운 것을 좋아한다”. 나이가 들 수록 새로운 것을 접하거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을 꺼려하거나 기회 자체가 적어지는데 그날은 그런 면에서 아주 신선하고 재미있는 추억을 남겼다. 무엇보다 살사의 건건성을 내 두눈으로 확인했고 , 다음번에는 낯선사람과의 춤보다는 친근한 다수의 멤버들과 마음 편하게 한 번 즐기러와도 좋겠다 싶다.

[여행이야기] 어떻게 나이들것인가? 뉴멕시코 여행, 그 의외의 소감

24년 10월 초, 3일이나 되는 공휴일을 끼고 다녀온 미국여행. 주로 머물렀던 뉴멕시코와 애리조나 홈스테이에서 느낀 점 의외의 포인트다. ‘어떻게 나이들 것인가?’

이번 여행이 특별했던 이유는 친구가 미국 현지인 집에서 하숙 중인데 지역적으로 대도시가 아닌 자연친화적인 곳인 점 , 그리고 집 오너들이 70세 이상의 여성이라는 점 덕분에 은퇴 후 전원적인 삶에 대한 미리보기를 조금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직 삶의 고단함과 한창 전쟁중인 중년의 눈에는 여유롭고 넉넉해 보이기만 한 그들의 삶인데, 그들도 그들 나름의 경제적 고민은 -연금, 생활비, 정치변화 등- 많다고 한다. 하지만 다닥다닥 붙은 이웃들과 하늘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집에서 살아가는 서울의 삶과는 너무나 상반된 이들의 생활공간을 보니 공간이 얼마나 인간의 사고를 제한하는지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이렇게 드넓은 공간에 자연과 동물 뿐인 곳에 서 있자니 정말 만감이 교차했다. 자연이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있고 교훈적인지 그 존재감에 연신 나는 감탄했다.

40살이 되도록 엄마와 동거하며 엄마가 부재한 날은 라면먹는 날인 철부지에게 이 명 문구는 던지는 메시지가 크다. 당신이 먹는 것이 곧 당신이다. 정성스레 잘 차린 음식을 먹는 사람과 인스턴트를 먹는사람은 존재 자체가 달라진다는 것인데 내 세포를 구성할 원료가 되는 음식에 나는 너무 정성과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을 두 집주인분들을 통해 알았다. 냉장고에는 저렴한 월마트 음식은 찾아보기 힘들고 거의 대부분 Sprout 같은 오가닉 전문 마트에서 온 음식들이었다. 계란 하나도 신경써서 몸을 챙기는 두 70대 여성을 보면서 장수를 위해서라기보다도 세상에 단 한번 사는 나를 위해 조금 더 정성스레 차려진 음식을 섭취할 필요가 있다는 그간 해보지 않은 생각을 했다. “언제나 라면의 가치가 평가절하 되어있다”고 울부짖는 <콩나물, 오뎅라면의 전문가> , 우리회사 대표이사님이 들으시면 하실 말씀이 많겠지만 .. 물론, 맛탕 쉽네 하고 고구마를 썩힌 나는 아직도 갈 길이 요원하다.

난 cat person. 그런데 이번에 여행 중 체류했던 두 집 어머님 모두 유독 크기가 큰 개들을 1, 2마리씩 키우셨고 삶의 패턴과 양식이 ‘가장 소중한 가정의 일원’인 강아지들에게 맞춰져 있었다. 산책은 당연하거니와 그들과 끊임없는 대화와 교감을 하는 주인들을 보며 세상에서 가장 loyal한 가족으로서 강아지의 가치를 느낄 수 있었다. 처음 본 나에게조차 무한한 애정과 관심을 표해주는 이 강아지들의 건강한 흥분은 내가 이미 어릴 때 잃어버린 순수한 호기심에 대한 향수도 불러일으켰다. 내 양말에 침을 흥건하게 묻혀 이리저리 뒹굴거리도록 내버려둔 장난은 좀 당황스러웠지만 해가 뜨기 전에 선선한 공기 속에 강아지의 이끌림에 따라 집앞 공원을 산책하는 애리조나 거주 70대 여인의 아침은 평화로운 즐거움 그 자체였다.

밤늦게 공항에 착륙하여 집에 자정에 가까운 시간에 도착했을 때, 집 주인이 나를 위해 배정해준 침실이 너무 예뻐 감동스럽기까지 했다. 앤틱한 미국식 높고 푹신한 침대도 그렇지만 벽에 걸린 너무나 어여쁜 그림과 포스터들, 멋스럽게 침대조명아래 놓인 몇 권의 책들. 다음날 날이 밝아 제대로 집 전체를 돌아보았을 때, 집에는 정말 수많은 그림과 장식품들이 놓여져있었다. 복도, 테이블, 장식장, 오피스공간, 부엌 어디랄 것 없이 모두 예술이 없는 공간이 없었다. 동양적인 자기들, 인디언문화가 깃든 소품들, 독특한 그림과 고급진 장신구들.. 집값의 부담으로 생활 수납공간을 마련하기에 바쁜 현대인의 눈에는 다양한 국가와 지역에서 온 이 모든 것들의 은근한 조화가 ‘아름답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예술적 안목을 가진 사람의 큐레이팅은 이런것인가? 무언가 삶의 치열한 전쟁을 마치고 나면 , 나도 언젠가 이런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을까? 라는 그동안 해보지 않은 생각의 영역을 경험했다.

또 하나 잊지 못할 추억은 바로 밤하늘의 별. 인간의 육안으로 큰 노력 없이 이렇게 많은 별을 볼 수 있단 말인가. 한국에서는 산골짜기 정도 들어가야 별이 보이니 , 별을 좀 보고있자면 등골이 오싹하여 무서움증이 들어 숙소로 바로 들어가곤 했다. 그런데 이곳은 사방이 탁 트여 아무것도 없고 별빛 뿐이다. 내가 방문한 시기의 문제일까? 아니면 지역적인 문제일까.. 이유는 모르지만 이 곳은 달이 높게 뜨지 않고 빨리 지고 밤하늘엔 온통 별 뿐이었다. 달이 없거나 작은 날 별이 밝다고하지 않나. 20년도 전부터 줄 곧 나에게 밤하늘의 별자리는 가장 쉽고 익숙한 북두칠성과 오리온 뿐이었다. 그런데 이 곳에 오니 그들이 정확히 어떤 별자리 사이에 있고 둘이 천구에서 어떤 위치에 존재하는지 한눈에 알아볼 수 가 있었다. 그저 조용히 바람소리에 귀기울이며 그 달만 쳐다보고 있어도 전혀 다른 세상에 와있는 느낌이다. 다른 행성들과 달리 이런 별들은 정말 수 십, 수 천, 수 만 광년 떨어진 곳에서 온 빛을 본다는 것이고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우리는 그 별의 무수한 기간 전의 과거를 보는 것이며 현재 그 별의 운명은 어떠한지 알 수 없다는 불길하고 슬프기까지 한 사실. (과학아, 정말 그러니? 난 듣고도 이게 사실인지 믿겨지지가 않아 ㅋㅋ얼마나 먼거리면 그런거야 ?) 별자리를 쉽게 알려주는 어플의 도움을 받아 이제는 제법 별에 대해 아는체를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제목처럼 나는 이번여행을 통해 나이듦에 대한 생각자체를 조금 바꾸었다. 육체적 노화의 슬픔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나에게 여전히 50, 60대는 조금 부정적인 기운을 지울 순 없을 것 같다. 그러나 70대는 이제 나에게 진정한 육체적 정신적 평화를 누릴 수 있는 나이로 느껴진다. 물론 현실은 그때가 된다면 병마와 지겨운 싸움을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여행을 하기 전 부정과 불안으로만 가득했던 나의 노년에 대한 이미지는 이로서 다소의 긍정적 선회를 했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친절히도 방 한켠을 내 준 집주인에게 남기고 온 편지에도 이에 대한 감사함을 표현했다. 그런 노년을 만들어가려면 지금을 충실히 살아야한다는 당연한 다짐도 함께 해본다. 잘 벌고 , 잘 자고, 잘 놀자.

[여행이야기] 캘리포니아와 LA 한인타운

LA, San Francisco와 같은 대도시를 포함하여 아름다운 해변도시를 자랑하는 캘리포니아. California Dreaming이라는 노래를 떠올리면 다소 쓸쓸한 느낌도 들지만 , 역시 캘리포니아는 눈부시도록 맑은 하늘과 멋진 해변 연중 온화한 날씨가 떠오른다. 국외 첫 여행을 유럽으로 끊고 호주, 동남아를 다녀온 후 제법 해외여행의 물이 좀 든 후에 미국에 첫 발을 디딘 것은 2017년 LA지점 출장 때였다. 미국 출장이 설레면서도 막상 일을 하러 온 일정이니 주말을 이용해 샌프란시스코와 그 안의 소살리토(명백히 첨밀밀3의 추억때문)를 다녀온 주말여행을 제외하고는 크게 인상깊은 기억은 없었다. 내가 좋아했던 헐리우드 영화의 단골배경은 언제나 샌프란시스코였으므로 금문교를 보고 소원을 풀어서였을까, 미국은 언제나 내 여행희망지의 후순위였다. 그렇게 미루고미루던 미국여행을 마음먹고 하게 된 것은 태산이 되어버린 나의 티끌마일리지 유효기간의 도움이 있었고 결정적으로 자기 표현의 ‘뉴멕시코 촌구석’에 사는 친구를 보기 위해서였다. 수식어는 촌구석이지만 광활한 자연을 배경으로 멋진 사람들과 귀여운 개들과 제법 삶을 멋드러지게 사는 자기 삶을 꼭 보여주고싶어했다. 여성으로선 드문 직업인 파일럿인 그녀가 평소 flight instructor로서 타는 작은 경비행기를 태워주고 싶다는 수요없는 공급도 있었다. 그래서 이번 여행자체는 10여일간의 일정 중 거의 뉴멕시코와 애리조나주에서 대부분을 보내고 캘리포니아는 출국 일정 마지막 이틀정도를 보내는 것이 다였다. 분명히 인상깊은것들은 미서부 내륙여행이었지만 (이부분들은 나중에 포스팅을 또 하겠지만) 글로 표현해내기에 넘치는 것들은 역시 캘리포니아에서의 기억들인것 같다.

LA 다운타운의 여행객으로 가득한 거리 (명예의 전당 근처)
야자수와 고급샵과 차량이 많은 배버리힐스 근처

산에 걸린 헐리우드 간판, 명예의 전당에 찍힌 배우들의 손, 귀여운 여인의 촬영지였던 베버리힐스를 내 눈으로 보고 내 코로 맡을 수 있는 L.A.는 그야말로 흥분의 도가니였다.

미서부 내륙사람들은 캘리포니아의 살인적 물가와 집값, 교통체증 등에 대한 상당한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다소 보수적인 사상을 가진 사람들은 지나치게(?) 진보적이고 개방적인 이동네가 문제가 있다고들 말하곤 했다. 여행 중 늘 이메일과 유선으로만 연락을 해서 꼭 한번 뵙고 싶었던 거래처 사장님도 만났는데, 그분도 캘리포니아가 앓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해 -높아만가는 범죄율, 한인 자영업자들의 경제적 어려움 등을 포함-회의적으로 말씀하시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고 누릴 것이 많은 , 다른 말로 하자면 인프라가 잘 되어있고 연중 맑은 날씨에 30분만 운전해 나가면 멋진 해변가가 펼쳐지는 이 곳이 너무 좋다고 하신다. 그나마 서울에서 가까운 인천도 1시간 정도를 나가야하는데, 베버리힐즈에서 정말 30분도 안 걸리는 산타모니카를 내 손으로 운전해 달려보니 현지인들이 왜 이 곳의 매력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지 이해가 됐다.

미국에서는 호텔에 주차를 해도 주차비가 따로 나온다하여 (팁 수준때문에 열받은 한국인을 두번 뚜껑열리게 하는 사실) 물가가 비싼 LA에서는 스스로도 마땅찮은 결론이었지만 LA 다운타운에 위치한 한인타운 한인민박에 머물기로 했다. 마당에 주차공간이 있어서 무료주차가 된다는 장점을 본 것이다. 미국에서 가장 미국적인것을 보는것이 현명하지 않나 싶었는데 한인민박에서 한국인 특유의 정감있는 한국사장님을 만나 체크인하고 주변 가이드를 한국어로 듣는데 그렇게 반갑고 좋을수가 없었다. LA의 범죄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어서 7시 넘어 밖에 나가면 죽는줄(?) 알았는데 ㅎㅎ 걸어다녀도 아무렇지 않다고 번화가에 한식당들도 너무 잘되어있다는 현지인 증언에 용기내어 밤거리를 걸어보았다. 미국에서 밤에 뚜벅이로 걸어본건 최초였는데, 다소 낯설거나 무섭게 느껴지는 부랑자들을 제외하면 갑자기 누가 총을 쏘고 -이런 상상속의 LA는 아니었다. 그냥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인게다. 아무튼 저녁에 나가 오랜 미국식 식사에 지친 입맛을 떡볶이로 달래주고 저녁에는 촌스럽지만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을 핥으며 집에 왔다.

다음 날 친구는 허리가 아파 근처 한의원을 소개 받아 다녀왔는데 원장님 왈, 한인타운에서 일하면 하루에 Thank you 정도만 영어를 쓰고도 생활이 가능하다고 하셨다. 한인타운에서 사업 운영하는데 고객으로서 한국인이 전부여도 사업이 영위되는만큼 큰 커뮤니티인것이다. 일부러 친구 치료 받는 동안 street을 block마다 구석구석 돌아다녔는데 정말 많고 다양한 한인기업들이 생존해나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양장점, 부동산, 치과 , 청소업체 등 다양한 업을 영위하고 있는 사장님들의 얼굴을 그려보니 갑자기 LA아리랑 시트콤 생각도 나면서 이민 1세대들이 이 곳에 와 자린고비 성공을 이루는데 얼마나 많은 설움과 노고, 시행착오가 이 길에 녹았을까 하는 갑자기 뭉클한 생각이 들었다. 해외에 나가면 그렇게 흔한 차이나타운을 지겨워했던 내가 국민들의 동포애가 얼마나 대단한것인지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그 동포애라는 것은 생각보다 아름다운 감정이라는 것..

한인타운 근처의 Street- 보행자는 길을 건너려면 보행자 버튼을 눌러야한다. 안그러면 영영 서있을지도ㅎㅎ

빡빡한 일정과 허리아픈 친구 때문에 무리한 일정을 잡을 수 없었기에 다운타운을 몇 시간동안만 본 게 전부였고 그래도 아쉬운 마음에 캘리포니아 해변은 봐야지 하고 다녀온 산타모니카의 석양은 정말로 이번 여행의 피날레를 장식할만한 가치가 충분했다.

LA다운타운 시내에서 20-30분 Drive거리에 있는 산타모니카이 석양!!

또 최고로 성공한 프렌차이즈 중 하나인 칙필레(CHICK FIL A)를 마지막 저녁으로 먹은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미국은 자고로 저렴한 가격에 쇼핑을 즐길 수 있다는 아울렛 쇼핑이 클라이맥스라 말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생각해보면 크게 미련은 남지 않았다. 첫 미국 방문 때 출장중임에도 아울렛에서 쇼핑을 했었고 피 같은 $200을 소매치기 당한 사건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혹은 나만 발견한게 아니지만 나만 아는 것 같은 ROSS라는 저렴한 브랜드 의류 판매 프렌차이즈 샵을 찾아 이미 수두룩한 셔츠를 샀기 떄문인지도 모르겠다. 언제나 미국은 긴 비행시간 때문에 방문이 망설여지는 곳이었는데 막상 저녁 8시 출발 비행기를 타고 가서 현지에서도 밤에 출발하여 새벽에 입국하는 일정을 소화하고 나니 5일정도 휴가를 내고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곳 아닌가 생각이 든다. LA정도는 그렇게 온다고 해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곳임에 분명하다.

Attagirl, 블로그 시작합니다.

나는야 Attagirl!

좋은 글, 잘 쓰여진 글을 읽는 것 만큼이나 글쓰기를 좋아하는 나의 아직 어색한 별칭은 Attagirl로 결정했다. 여자에게 해주는, ‘옳지!(잘하고있어)’라며 독려해주는 말이라는데 무지 마음에 든다. 어쩌면 내가 나스스로에게 지금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기에 해주고싶은 말인지도 모르겠다.

그냥 써내려가는 이야기

정보성의 글보다는 마음을 담은 편지나 에세이를 좋아하기에 네이버 블로그를 1년여정도 운영해본 결과 그런 류의 글쓰기에는 내 진실된 영혼을 담기가 어렵다는 결론… 그래서 그냥 내 감성대로 내 마음대로 끄적여보기로 했다. 책으로, 유투브 조금으로 배운 워드프레스 속성수강생으로서 디자인은 나중에 (어쩌면 평생안할지도) 손보기로 했고, 많은 스승님들 말마따나 일단 , 무작정 써보는거다. 누가 봐주기를 바라거나, 빨대만큼 작은 파이프라인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보다 더 큰 이유는 – 나에게 글쓰기는 일종의 카타르시스가 되기도하고 복잡했던 머릿속을 정리정돈하는 과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글을 쓸 당시에는 ‘상당한 시간을 내 머릿속에 기억될 것’ 이라고 생각했던 많은 기억들이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휘발함을 알게된지는 꽤 되었으므로.. 오픈공간인만큼 비유하자면, 감정의 잠옷을 입고 나다닐 수는 없겠지만 , 머리를 빗고 세수를 하고 적절한 옷을 걸치는 정도의 적나라레벨로 써보는거다.

내생에 최초 온라인 집을 갖다!

도메인도 사고, 호스팅도 하고 , 디자인도 하고 – 마치 .. 고대했던 첫 내 집을 마련하면서 계약서 쓰고 , 짐을 옮기고, 전입 신고를 한 후 내부 인테리어를 해나가는 과정. 홈페이지 오픈(발행)은 집들이 정도에 비유할 수 있으려나 ㅎㅎ 그런데 친구에게 한 우스갯소리처럼 그냥 짐만 옮겨 놓고 바로 집들이를 연 것이다. 누추하고 어설픈 맛이 있는 24년 7월 26일 attagirl의 현재. 급할 것 없다. 매일 하루에 하나만 ㅎㅎ 꾸며나가면 되지 않을까? 노곤한 한주를 보낸 15년차 직장인의 금요일 밤이니 일단 잠이나 자야겠다. 12시 넘기기전에 우리엄마가 목숨거는 OK캐쉬백 만걸음 보너스포인트 황급히 받아낸게 너무 뿌듯한 1인… 그럼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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